선생님과 스승 | Diary

선생님이라는 단어를 책에 있는 내용을 가르치는 사람으로
스승이라는 단어를 교재 이상의 내용을 가르치는 사람으로 정의한다면
살아오면서 나는
여러 선생님들과 몇몇 스승을 거쳤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잠깐의 고등학교와 대학, 몇 달간의 학원.
선생님보다는 스승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 속에 선생님들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몇 몇 스승이라 부를만한 분들.
하지만 그 분들조차도 그리 많은 것을 남겨주시지는 못했다.
지금와서 생각하면 당연하다 느낀다.
그분들 역시 한낱 사람이니까.

사람이 살아가면서 스승을 만난다는 것은
그 스승과 오랜시간 함께할 수 있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면
그것은 분명 큰 행운일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분명 세상엔 스승이 될만한 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들 중 스승으로서 가르침을 베풀기를 원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 것이며
그들을 어떻게 알고 가르침을 청할 것인가.

어제 우연히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눈에 띄는 글을 읽었다.
인터넷 논객의 글이었는데
지난번 처음 글을 올렸을 때 남은 인상이 깊어서 어제 검색해보니 꽤나 많은 글이 올라와 있었다.
08년 12월 9일에 첫 글을 올렸는데,
눈에 띄는 점은 첫 글을 올릴 때 이미 앞으로 어떤 식으로 내용을 전개할지 정해놓고 있었다는 것이다.
마치 작가가 글을 쓰는 것처럼.

작년 미국에서 700억달러 지원안이 통과되었을 때,
나는 당연히 달러 가치가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제까지만해도 왜 강달러가 유지되는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논객의 글을 읽고나니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내가 이미 그 과정을 이해할 과정을 알고 있었다는 것도 깨달았다.
불과 며칠 전에 배운 내용조차 활용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외에도 08년 초부터 환율이 오를 수 밖에 없었던 이유라던가
경제학의 큰 조류의 흐름이라던가
패권국의 입장에서 바라본 한국의 위상이라던가 하는
많은 내용이 충분히 공감이 갔다.

지금까지 제자가 스승의 영향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생각하면서도
별다른 이유 없이 그저 막연히 그렇겠지 하고 생각하던 것이 이번에 바뀌었다.
여러 의견이 대립되는 가운데,
자신이 충분히 공감할만한 설명을 하는 사람에게 배움을 청한다면
자신이 잘 모르는 부분이나 관심이 없던 부분에 대해서는 스승의 경향을 따라가기 쉬운 것이다.

아무튼 그 논객의 의도가 선의든 악의든간에
하나의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어느정도 존경에 가까운 마음이 일어난 것이 사실이다.


10.02.20 덧붙임.
위에 적은 논객은 필명으로 세일러를 사용하던 논객이다.
작년 언제쯤부터였을까..
서서히 글의 분위기가 꺼림직한 의도를 담고 있는 것 같아 읽지 않았다.
인기몰이를 한 후에 그 의도 섞인 말들을 하려고 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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