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디 - 비폭력 무저항 운동 | Diary
>2012. 6. 14. 12:36
언제부터인가 옥수수로 더 유명한 간디의 비폭력 무저항 운동.
예전엔 한놈이라도 죽이고 죽던가 해야지 그게 무슨 소용이야 생각했었다.
지금도 그 편이 더 낫다는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중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저항은 바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대중은 약하고 대중은 어리석다.
대중은 행동력이 없다.
간디는 과연 대중의 이러한 속성을 깨닫고 자신의 저항의 방향을 결정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인도라는 거대한 회사를 삼킨 기업이 직원들이 태만하다고 해서 과연 인도를 포기할 가능성이 있을까?
바꿀 수 없는 직원들의 근무태만은 회사의 이익에 악영양을 줄 수 있을지 몰라도 단지 그 뿐이다.
당신이라면 매일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상태가 안 좋아서 나흘에 한번씩 알을 낳는다고 해서 거위를 버리겠는가 말이다.
나라를 빼앗긴 국민의 상황은 딸과 아내가 물에 빠졌는데 한 명만 구할 수 있는 남편의 상황과 같다.
경제학적 용어로 말하자면
인도인들의 반영운동으로 인해서 인도에서 나오는 수익이 영국이 인도를 지배하는 데 필요한 평균가변비용보다 적어져야 한다.
그리고 이는 불가능해 보인다.
간디의 무저항 운동 그 자체로는 대단한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단지
반영의 정신을 이어가고 저항하는 인도인들을 모음으로서 아직은 실현되지 않은 폭발적 저항의 가능성은 만들었다.
끝까지 비폭력 무저항?
간디는 정말 끝까지 그럴 생각이었을지 모르겠지만 만일 영국의 상태가 메롱해지지 않았다면 간디 이후의 지도자에 의한 폭력적 저항이 나았을지고 모를 일이다.
가능했다면.
이명박 정부는 왜 촛불집회를 기를 쓰고 막았을까?
당장은 평화로운 집회지만 그게 언제까지고 평화롭다고 믿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건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걸?
평화로운 집회라고 아이까지 대동하고 나온 새내기 부부들도 있었지만 종교집회가 아닌
엄연한 적이 있는 집회인 다음에야.
엄연한 적이 있는 집회인 다음에야.
종교집회도 적이 있으면 폭력적으로 변하는데
(들어봤나? 사찰이 무너지게 해주시옵소서! 미친 개독. 더군다나 토속신앙이랑 매춘을 같은 선에 놓고 보네.)
민중집회는 말할 것도 없지.
그래도 한창 평화로울 때 물대포 쏘아대고 삼단봉 휘날린 이명박 정부의 미친짓이 정당화되진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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