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의 저항 | Diary

방금 노동청에서 연락을 받았다.
회사에서 내가 자료라고 제시한 며칠에 대한 시간외 근무를 인정해주면
노동청에 제기한 진정을 취하할거냐고 했다고 한다.

왠만하면 회사 다니고 있는 전 직장 동료들에게 개인으로서 특정되는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다.
회사에 대해 안 좋은 소리 했다는 게 알려지면 여러모로 불이익을 당할 테니까.
오죽했으면 감독관이 전 직장 동료들 연락처 가지고 있냐고 했을 때 없다고 했을까.
회사가 나쁜거지 직원이 무슨 잘못이 있단 말인가.
뭐, 관리자들이야 이미 어느정도 회사라고 봐도 될 수 있겠지만, 실무 직원들은 그냥 시키는 대로 하는거니까.
그들도 힘 없는 노동자이긴 마찬가지다.

아마도 내가 더 이상의 증거 혹은 진술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회사의 저런 기가 차는 대응에 별다른 저항을 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입사 후부터 올해 초까지 사용했던 휴대폰을 켜 보니 상당한 양의 자료가 남아있었다.
아쉽게도 남아있는 녹음 파일은 일주일치 정도 밖에 되지 않지만
회사에서 발송한 문자들은 충분한 증거능력이 있겠지.
그리고, 내가 지금 적었던 이런 글들.
내가 블로그에 적은 무보수 시간외 근무에 대한 한탄. 이 역시 증거능력이 될 수 있을 터이다.
휴대폰에 메모리 카드를 다른 용도로 사용하지 않았다면,
좀 더 많은 녹음 파일이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남아 있는 자료가 있다는 것만 해도 감사할 일이다.
좀 더 자주, 좀 더 많은 내용을 기록해 놓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아 있지만,
뭐 여기에 적는 글들의 목적은 그게 아니니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에 만족할 뿐이다.

회사에서는 내게 너무 악하게 나왔다.
퇴사할 때 내게 지급한 시간외 수당에 대해서도 실제로 시간외근무를 인정해서 주었던 게 아니라
퇴사하는 직원에게 선의로 지급했다는 식으로 이야기 한다.
(그럼 지금까지 조용히 퇴사한 직원들은 다 호구냐?)
회사에서 산출한 금액, 실제 내 노동에 비하면 얼마 안 되는 시간, 
그 보다 더 많은 인정을 원하면 소송을 제기하든 무엇을 하든 능력껏 받아가 보라는 식으로 이야기 한다.
노동자가 회사를 상대로 자신의 억울함을 보상받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회사는 노동자에게 악하게 한다고 해도 잃을 것이 없으니까.
회사에서 발생할 수 있는 손해는 결국 정당하게 지급했어야 할 금액보다 적을 것이다.
상황이 이러니 노동자에 대한 착취가 공공연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아무튼 회사에서는 내 억울함을 무시하는데...
나는 빈 총을 들고 싸우는 게 답답했는데 길바닥에서 총알 한 발 주은 기분이다.
트리거를 당겼을 때 적에게 명중할지, 불발탄이나 빈 총알임이 나타날지 알 수 없지만 
아무것도 없을 때 보다는 확실히 든든하다.


분명 지금 내가 이런 문제에 신경을 쓸만한 시기는 아니다.
하지만 이 정도 노력도 해 보지 않고 묻어둔다면,
아마 언제까지고 이따금 내가 그 때 참 억울했는데 왜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을까 하고 후회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어느정도는 노력해볼 필요가 있다.
그럼 나중에 이렇게 한탄할 수 있겠지.
이놈의 더러운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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