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셉션 - 오랜만에 영화 한 편

어제 오후에 도서관으로 친구가 왔다.
저녁 먹었니?
먹었다고는 죽어도 말 못 하지.
저녁을 먹으러 갔다.
얼마전 본 '국가가부른다'라는 드라마에서 마음에 드는 대사를 가슴에 새겼다.
- 비싼게 맛있는거 좋은건 비싼거.
뭐가 좋을지 몰라서 그냥 비싼거 시켰다.
다른거랑 얼마 차이 나지도 않았지만.

예전에(그래봐야 1년 전) 홍초불닭에 갔을 때,
닭갈비는 혼자 먹으로 오는 사람이 없을 것 같았고,
18,000원짜리 닭갈비[그래, 닭갈비는 비싼 음식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메뉴가 1인분일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고,
계산할 때 그저 벙 쪘었다.
지금은 필요 이상으로 비싼 메뉴를 봐도 그냥 별 생각이 없다.
다음에 안 가더라도 메뉴판 보면서 가격 따지는 건 의미 없잖아.

당연히 내가 계산할줄 알았는데 친구가 계산하니까 살짝 미안하더라.

거기 서빙하던 여알바 얼굴이 그다지 예쁘지도 않은데 익숙한걸 보니 어디서 꽤나 봤던 아이 같았다.
아니면 무슨 배우라도 닮은 건가.

밥 먹고 영화를 보러 갔다.

인셉션, 처음 가 본 Cinus였는데 뭐 그냥 평범하더라.

영화는, 길었다.
영화를 그냥 보는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영화관에 백만년만에 갔다는 말이지.]
드라마, 영화(, 그리고 애니) 할 것 없이 3배속으로 보다보니 일상 생활하는 데에는 지장이 없는데,
저런 매체를 접할 때 정배속으로 보면 굉장히 어색하다.
한국영화라면 가끔 오다가다 TV 드라마라도 조금씩 보니까 덜 하겠지만
(조금 보다보면 속도에 익숙해 진다.)
외국어를 들을 일이 적으니 더하다.
박진감 넘치는 액션 장면일 텐데 슬로우 효과를 준 느낌이다.
배우들이 세 살 짜리 아이한테 말을 가르치려고 "하-우-두-유-두" 하는 것 같다.
그런데도 지루하지 않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으니 상관은 없지만.
좀 복잡한 영화였고, 그렇게 기억에 남을만한 영화도 아니었지만
한번쯤 봐도 나쁘지는 않을 영화였다.
현실과 꿈 속의 경계를 구분할 수 없다면 왜 굳이 현실로 돌아가려고 하는지 이해가 안 됐지만,
이런 영화 한 두번 보나.
비슷한 작품으로는 13층이나 좀 거리가 있지만 트루먼쇼도 있겠고.

어제 친구가 밥 먹으면서 바다에 가고 싶은데 갈 사람이 없다고 여러번 얘기 했는데
설마 나한테 같이 가자고 말 한건 아니겠지.
아무렴 내가 그렇게 눈치가 없을라고.

영화 끝나고 보니 집에서 연락이 왔더라.
평소에 막차 타고 가는 시간보다 조금 늦게 영화가 끝날 줄 알았는데,
예상 외로 영화가 길었고, 내가 늦게 간다고 연락도 안 했기에 집에서 걱정했던 모양이다.
...
언제라도, 아무도 없는 집에 간다는 생각을 해 보면 싫긴 한데,
빨리 돈 벌어서 독립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평소 늦던 시각보다 두 시간이 안 되게 늦었는데 걱정할 사람이 집에서 기다린다는건,
부담스럽다.
많이.

어제 우연히 박우람 이 인간 이름이 나왔다.
어리숙함을 컨셉으로 잡고 사는 내가 좋아하는 형인데,
아마 내가 느낄 정도로 내 성격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 인간은 저 인간이 유일하지 싶다.
내 주변에 저런 인간이 한명 꾸준히 붙어 있었으면 내 성격에 꽤나 많은 영향을 미쳤겠다 싶다.
좋은 쪽으로.
고작 한 학기로는 짧았어.

순진무구하던 어린 시절을 지나서
스무살 쯤 되니까 남자랑 여자랑 편한 친구 관계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재작년 도서관에서 친구 두 명을 오랜만에 만났을 때만 해도
(뭐, 초등학교 미녀삼총사는 예외로 하고)
어디 가다가 우연히 스치면 반가운 표정을 지으면서(반가울 수는 있었겠지) '다음에(속으로는 다음 세상에) 밥 한번 먹자'고 얘기는 했겠지만 [서로 마찬지겠지]
어린시절 동창인 여자인 친구들과 밥을 먹는다던가 밥을 먹는다던가 밥을 먹는다던가 하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었다.
그 두 명이 중등시절 나름 추억이 서린 친구들라 그런지 몰라도 아무튼 잘 된 거지.
이건 여자인 친구들과는 인간관계가 전혀 없었으니까 변한 거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예전에 별로 안 친하던 여자인 친구들은 역시나 여전히 무진장 서먹할 거 같아.
그래, 역시 별로 친해지고 싶은 생각이 없는데 굳이 어색함을 무릅쓸 필요는 없잖아.
Case By Case. 그 때 그 때 달라요.

요즘 도서관에서 남자인 친구들과 같이 공부하고 있다.
예전에 그럭저럭 친하게 지내던 친구도 있고
한 학년 다 해봐야 40명 밖에 안 되던 중에서도
그저 이름이나 알고 지내던 친구도 있는데 자주 보다보니 그냥 익숙해지는구만.
평생 몇 마디 나눌 일 없을 것 같았는데 의외지.

인간관계 - 예전에 굉장히 부담스러웠는데 특별히 싫다거나 안 맞는 인간이 아닌 이상 별 거 있어?

그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