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

아내의 꿈 - 안도현

ailvastar 2009. 6. 26. 18:16
아내의 꿈 - 안도현

끝까지 탈퇴각서를 쓰지 않는다면
법대로 처리할 수밖에 없다는
교장의 협박전화를 받고는
아내는 토끼 새끼처럼 오돌오돌 떨었습니다
지아비가 밥줄 끊어지는 것을
남의 일처럼 보고만 있느냐고
사내 마음은 여자가 어찌 하느냐에 달렸다고
시어머니의 뜨거운 질책에
아내는 소나기로 펑펑 울었습니다
학교 떠나 어디 가서 참교육 하느냐고
더 큰 전진을 위해 일보후퇴하고
다시 앞날을 기약해 보아야 한다는
우리 학교 선생님들 안타까운 설득에
아내는 그날 밤 한숨도 자지 못하였습니다
내가 해고된 뒤에는 남들 보기도
부끄럽다며 바깥 나들이 횟수가 줄고
툭하면 침울해지던 아내였습니다.
아이가 아프거나 반찬거리가 떨어지면
짜증 먼저 부리던 아내였습니다
그 아내가 변했습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한 장 한 장 유인물을 돌리고
가슴에 참교육 배지를 달고 다니고
길거리에서 지지 서명을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집회에 참석하여 노래를 배워 부르고
그 가는 손목으로 구호를 외치기 시작하였습니다
나약하기만 하던 한 여성이
그 아내가 무척 변했습니다
전보다 학교 환경이 부쩍 나아지고
평교사의 봉급이 대폭 오른다고 해도
가르치고 싶은 것을
뜻대로 바르게 가르치지 못하는 학교라면
그런 학교로는 안 돌아가도 좋다고
피땀 흘려 싸워서 얻은 것이 아닌
그저 주는 떡이라면 안 먹어도 괜찮다고
지금 비록 궁핍하지만
아내는 무척 넉넉해졌습니다
당신이 부여 안고 있는 깃발이
하늘보다 더 푸르고 싱싱하게 휘날릴
그날이 오면
당신을 쫓아낸 사람들의 허물도
그 깃발로 감싸주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어느새 아내는 나를 가르치는 교사입니다
다시 분필을 드는 그날이 오면
죽어도 교단에서 내려오지 않고
언제까지나 사모님 소리 좀 듣게 해 달라고
아내는 상추같이 웃으며 아침 상을 차립니다
제발 서로 싸우지 말고 미워하지 말고
살맛나는 세상으로 한 걸음씩 걸어가게 해주십시오...
모두들...